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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가버나움 / 나딘 라바키


"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 받고, 사랑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걸 원하지 않아요. 

우리를 짓밟을 뿐이죠. "




  2019년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영화를 보게 되면 안 되는데… 빈곤층, 난민, 이민자, 아동,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작품.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비슷하다는 평을 듣고 보러 갔는데, 그것보다는 <무스탕: 랄리의 여름>과 더 비슷하다고 느꼈다. 물론 <가버나움>은 플로리다의 빈곤층 여성과 아동에 대해 다루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엄격한 무슬림 집안 내에서 강제적인 결혼과 맞닥뜨린 어린 여성들을 다루는 <무스탕:랄리의 여름>보다 더 확장된 대상을, 더 처참한 배경 하에 전달한다. 적어도 랄리와 무니는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할" 서류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나.


 더욱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을 다룬 영화들은 지난 몇 년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내일을 위한 시간> 같은 영화들 말이다. 어쩌면 <소공녀> 같은 결의 영화까지, 한 사람의 자존과 존엄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자주 가슴에 새긴다. 그것 또한 최선의 자존이 되는 것처럼.


 불행의 경중을 따지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으나 <가버나움>은 앞서 서술한 모든 영화들 중 가장 견딜 수 없는 환경을 근간으로 한다. 주인공 '자인'을 비롯한 어린아이들이 자라는 빈민가는 여러 건축물이 엮이고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미로 같은 형상을 띤다. 무슨 짓을 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그 동네의 모습이 나는 아팠다. 몇 해 전 한 책에서 빈곤 아동에 대해 다룬 취재록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필자가 이르길 가난한 아이들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무기력이었다.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 그리하여 미래를, 더 나은 것을, 귀하고 깨끗하고 다정한 것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무기력. 빈곤은 당장 배를 굶기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의 마음을 바닥까지 긁어낸다. 가난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다. 희망과 기대를 갉아먹으며 무기력은 몸집을 불린다.


 그래서 작품 후반,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자인의 고백이 나는 괴로울 정도로 슬프다. 한 인간의 삶에서 그토록 짧은, 막 시작된 12년 간 자인은 얼마나 자주 무뎌졌을까. 존중 받고 사랑 받고 싶다는 기대는 몇 번이나 자인을 배반했을까. 크게 밀어붙이는 파도 바로 앞에서 모래성을 짓는 사람처럼 기약 없이 무너지고야 말 희망을 여러 번 짓고 또 지었을 것이다.


 물을 먹은 모래는 마른 모래보다 단단하다. 멀고 긴 길을 돌아서야 되찾은 자인의 웃음은 이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