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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웹서핑 도중 누군가의 블로그를 읽다가, 한 영화 리뷰에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적어둔 것을 보았다. 그 문장을 읽고 한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내가 최근에 어떤 영화를 보며 "너무 행복"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나, 길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걸 깊게 알게 된다는 말이고, 깊게 알게 된다는 말은 또 무진 깐깐해진다는 말과 비슷하다. 작품에 대고 너무 좋아, 최고야, 라고 쓰는 비평가가 없듯이, 나도 어떤 것을 진득하게 좋아한다는 것은 곧 감상과 표현에 있어 전문화된 언어를 사용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좋아하며 "너무 행복"하다는 기분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좋아하는 의미가 있기는 한가?


 당연히 나도 그러한 종류의 기분을 느끼기는 한다. 아주 좋은 것을 보았을 때 그러는데, 위에 언급한 비판적인 시각 탓에 아주 좋은 것을 찾기가 무척 어려우므로 그럴 기회가 적은 편이다. 근래 내가 영화를 보고 매긴 평점은 거의 6 혹은 7, 높으면 8, 정말 매우 굉장히 드물게 9. 10은 없다. 너무 행복, 해지기가 이렇게 힘들다.


 그래서 이제는 힘을 빼고 좋아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나는 어떤 것이든 한 번 불이 붙었다가 훅 식으며 금세 질리는 편인데, 힘을 잔뜩 주고 마음을 쏟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이 더 심한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행하는 '피카부식 사랑("새 것만 좋아해요, 반짝거리죠 / 설렐 때만 사랑이니까")'이나, '<너무 한낮의 연애(오늘은 사랑하는데 내일은 모르겠다고)>식 사랑'이 나쁜 것은 아니겠고,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존중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젠 좀 진득하고 행복하게 좋아해봐야겠다 싶다. 


 그러다가도 또 마냥 좋아하기만 하는 것은 실망할 일이 더 크다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허들을 낮추고 한껏 좋아해보기로. 살짝 늦었지만 신년 목표는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