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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중립에 관한 비중립적인 견해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 있는 것이다.

/ '엘리 위젤'의 노벨 평화상 연설 中

 난 소위 말하는 '중립충'을 경멸에 가깝도록 싫어한다. 중립 기어 따위의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중립을 택한 사람들 중 다수가 자기들이 엄청나게 이성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양 행동하는 꼴도 우습고 하찮다. 사실 중립을 싫어하는 이유는 서문에 언급한 인용문이 이미 다 말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과 악의 흑백논리를 쓰자면, 중립은 결코 선의 편이 아니다. 중립은 악이다.

 근래 모 영화가 개봉한 뒤 발화되는 꼬라지들을 보고 있자면 참, 중립이라는 게 너무나도 웃기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른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랄지, '모두가 피해자다' 같은 말들. 너무 웃겨서 욕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어디 비단 해당 영화에만 따라붙는 말이겠는가. 여성 연예인이 엮인 인터넷 연예면 기사만 보아도 아, 중립이란 게 정말 쓰레기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름 낀 안경을 올리며 중립 기어를 잡겠다고 선언하는 어떤 사람들의 손가락을 죄 꺾어버리고 싶다. 

 중립은 악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돕지 못할 것이다. 격렬한 투쟁을 벌인 이들을 조롱하기 위해서만 쓰일 것이다. 일단 지켜보자는 말, 자긴 잘 모르겠다는 말. 정말 지켜보고 있긴 하고, 알고 싶긴 한 건지 의문스럽다. 중립은 오로지 그것을 선언한 개인에게 극히 이롭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비중립적인 견해를 펼친들 대다수의 사람들은 끝끝내 중립을 지키려 할 것이다.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말과 동일하다. 대중들은 무엇도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으니, 중립은 계속해서 다수의 태도가 될 것이다. 그래,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중립충들은 계속 양산되고 계속해서 자긴 참 현명하다고 믿으며 피해자가 찢기든 죽든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밑져야 본전, 그런 자세로 살 것이다. 그들은 종교를 믿듯이 믿는 것이다. 자긴 결코 저런 사안의 희생자가 될 일이 없을 거라고. 아니, 세상에 희생자는 없다고. 아니, 더 정확히는 있든 말든 관심 없다고. 맙소사. 이 중립적이고도 역겨운 현대 사회에서 비중립적인 사람들은 대체 뭘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선언은 단 한 가지이다. 어떻게든 더 비중립적으로 굴 것. 지지가 필요한 이들의 손을 붙잡고 중립 기어를 세우겠다는 인간들에게 길길이 날뛰면서, 당신들처럼 저열한 인간을 본 적이 없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일을 할 것이다. 원래 극(劇)은 평균을 상쇄시키는 법이니 이 정도 위선, 혹은 위악인들 해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랴. 나는 중립 기어를 꺾고 가야 할 곳을 향해 액셀레이터를 밟을 것이다. 허튼 중립이 누군가를 망치지 않도록 힘쓸 것이다. 마음 쓸 구석을 두고 싶지 않다고 징징대는 현 사회에서 그래도 좀, 극적으로 살아보자.